칼이 이끄는 죽음의 유무의미
너무 무겁고 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역사소설에, 너무 마초적이라서, 나로서는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함의가 많은 건조한 문장일지언정, 문장에 실린 힘이 가볍지 않아 문장력이 탄탄한 작가란 생각은 들었다.
주인공이 이순신장군이고 난중일기를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심리묘사가 대단히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가 바로 그것에 있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세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생각의 흐름과, 결과적인 그의 선택의 프로세스를 함께 따라가게 된다.
자신의 삶의 위치에서, 당위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주변환경과 그에 따라 드는 인간적인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선택들에 이르는 부분이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한 인간이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나 환경을 어떻게 마주하고 고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따라 선택하고 행하는가? 를 주의깊게 보았다.
그의 선한 의지와, 고통스럽지만 선한 선택들(운명적인 닥쳐올 죽음에 대한 선택까지…) 또 그 선택이 실현이 되든 안되든 자신 의지와 상관 없을 수도 있겠으나, 신의 가호는 그 선한 의지를 돕는 쪽으로 결과를 가져다 준 어떤 운명의 호의?를 얻게 됨을 보았다. 즉, 그는 그가 예상하고 원하던데로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그는 죽었고, 나라는 빼앗기지 않았고, 그래서 역사는 아직도 그를 감사와 존경심을 담아 기억한다.
이 책을 탄핵기간동안 읽고 추천까지 했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나 매우 이해가 갔다. 그분의 외로움, 두려움, 그리고 끝끝내 해낸 그의 선택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다른이들이 여전히 그러하듯, 나 역시 아직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작가소개: 김 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 쪽이냐’ 』 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명문장 밑줄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에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
“아들 면이 죽었다고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덜 삭은 젖내가 나던 면의 푸른똥과 면이 돌을 지날 무렵의 아내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밀려 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쇠가 살아 있었다. 칼자루에 감은 삼끈이 닳아서 반들거렸다. 살아서 칼울 잡던 자의 손아귀가 뚜렷한 굴곡으로 패어 있었다. 수없이 베고 찌른, 피에 젖은 칼이었다. 나는 그 칼자루를 내 손으로 잡았다. 죽은 자의 손아귀가 내 손아귀에 느껴졌다. 죽은 자와 악수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고통은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송희립은 내 갑옷을 벗기면서 울었다. <나으리, 총알이 깊지 않사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 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후기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군주(대통령)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는 위태롭고, 주변 아첨꾼들은 떵떵거리며 갑질 행세를 해도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의인들은 늘 질투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순신 장군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그러나 그 답답한 현실가운데 지조를 지키고 나의 직무를 다함으로써, 누군가는 큰 도움을 받고 꿋꿋히 걸어간 삶에 유용함을 더해준다면, 답답한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힘든 시대를 조기종식할 수 있도록 물줄기를 돌리는 키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견디게 위해 이런 선조의 삶을 읽고 그 뜻을 헤아려 지혜를 얻고, 함께 연대하여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은다.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써, 저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던 영화 ‘밀정’의 대사가 이순신 장군의 얼굴위로 지나가는 듯 하다.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조상의 선한 의지를 이어받은 DNA들이 축복처럼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그 죽음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