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감동
감옥이라는 단어가 주는 답답하고도 무거운 곳으로부터 나온 글이지만, 글 자체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 수감중일 때 가족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묶어 낸 책이지만, 어두운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 등으로 절여진 느낌은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맑아지고, 단아해지고 성숙해져가는 성장의 느낌이 풍성하다.
작가는 자신의 상황에서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들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하며 애쓴다. 오히려 그들 때문에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닦을 힘을 얻고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려 애쓴다. 20년이라는 오랜 수감생활 중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돌보아주신 부모님 뿐 아니라, 그의 형제들까지 참으로 대단한 가족애이자, 모두가 훌륭한 지성인들로 여겨져,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존경심마저 들게 했다. 한 젊은 지성인이 국가의 잘못된 정치시류에 맞서 외치다가,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세력에 의해 오랫동안 감옥이라는 장소에 묶여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훌륭한 젊은이는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때를 기대리며, 변화하는 환경과 함께 자신 또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해낼 성인이자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글은 유연하면서도 결연한 아름다움을 지닌것이, 작가의 성품을 말해주는 듯 했다. 간간히 그가 그린 그림이나, 시 등은 간결하고도 따뜻하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죽을 때까지도 그의 영혼은 변함없이 빛나고 아름다웠다.
작가소개: 신영복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10년 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 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과 동양고전을 통해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을 설명한 『담론』은 부제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한다. 책 속 곳곳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다.
그 밖에 다른 저서로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 공역, 4권)이 있다.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홈페이지에서 저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출처: 예스 24 작가소개]
밑줄들
기계적이고 습관화된 대화는 인간관계의 정체를 가져오며 인간관계의 정체는 관계 그 자체의 퇴화를 가져오며 필경은 양 당사자에게 오히려 부담과 질곡만을 안겨주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부부라는 가장 기본적이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것이 배제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형님의 결혼… '71. 5. 25.
아버님께 별로 이해되고 있지 않다는 일종의 소외감 같은 것이다…아버님의 '아들' 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성과 사상을 가진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이해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염려의 편지'가 '대화의 편지'로 바뀌어진다면 저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님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염려보다 이해를_아버님께, '72. 3. 16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아름다운 여자'_동생에게. '75. 1. 13
>>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이견이 없는 어구에 자신만의 다른 발상으로 깨달은 이치를 더해 고정관념에 허를 찌른다. "낙엽을 보고 애상하기보다는, 낙엽을 걷힌 후, 보이는 굳건히 뻗은 전나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도 그렇게 굳건한 오늘을 만들겠다"는인용구를 보면서…'참으로 훌륭한 어른이시다.'는생각을 한다.
제가 어머님께 바라고 싶은 것은 젊은 사람한테 자꾸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옛날 같지 않아 이제는 점점 젊어가는 노인이 되셔야 합니다. 진정 젊어지는 비결은 젊은이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좋은 시어머님_어머님께. '76.1.19
예도는 인도의 대하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인도와 예도_아버님께. '76. 7. 5
'푸른 과실이 햇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 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 듯이' 저도 이 가을에는 하루하루의 아픈 경험들을 양지바른 생각의 지붕에 널어, 소중한 겨울의 양식으로 갈무리하려 합니다.---> 낮은곳_형수님께. '80. 10. 20.
>> 나의 낮고 누추하고 아픈 삶도 묵상의 양지에 잘 널어, 소중한 양식이 되도록 갈무리하는 남은 삶이 되도록 하렵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바른 흔적으로 남겨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 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 떠남과 보냄_계수님께. '80. 11. 10
"없음(無)으로써, 쓰임(用)으로 삼는 지혜"---> 없음이 곧 쓰임_아버님께. '81. 2. 14
>> 그릇은 그 가운데를 비움(없음)으로써 쓰임을 만드는 비유를 말하는 구절을 보면서, 나도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나의 쓰임을 주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될 수 있는 한 나의 정신의 변화, 발전과정을 간추려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제 3자의 언어로 표현된 자기를 가져보려는 시도의 하나입니다….. 버들잎 한 장으로써도 천하의 봄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함과,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는 유유한 시정을 지니고 싶어 하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듯이_계수님께. '81. 6. 2
담담하고 유연한 자세는 어려움을 건너는 높은 지혜라 생각됩니다.---> 할아버님의 추억_아버님께. '81. 8. 27
불사춘광 승사춘광, 봄빛 아니로되 봄을 웃도는 아름다움이 곧 가을의 정취라 합니다. 그러나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다 하여 가을을 반기지 못하는 이곳의 가난함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창백한 손_계수님께. '81. 10. 6
>> 표현이 참 멋지다!
나의 소회
이 책을 읽고 가장 나에게 큰 영향과 깨달음은 준 것은, 작가 자신도 훌륭하지만, 작가를 직접적으로 돌보고 기다린 그의 가족들이었다. 영치금, 서적지급, 편지, 방문 등... 오랜시간에 걸친 가족들의 수고와 인내에 정말 감탄했다. 이런 가족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신영복 선생님의 성품의 바탕과, 그 인격의 어떠함을 엿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의 그러한 희생의 열매는, 신영복 선생님이 출소 후, 학교와 사회에 미친 좋은 영향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사랑의 희생은 아름다운 것이요, 결코 헛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인지, 내가 믿는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딸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부모님과 내 하나님의 사랑의 수고를 돌아보니, 내가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분들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 그리고 지금도 곁에 함께 계신 나의 크신 하나님!
신선생님 가족의 사랑의 수고와 인내를 통하여, 나는 아이들의 부족함을 탓하는 어리석은 엄마임을 깨달았다. 내 삶의 척박함에 비통해하느라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독립시킬 생각이 가득했고, 삶에 대한 원망과 미움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심정을_애써 외면하려던 죄책감을- 이제는 당당히 마주하기로 했다. 그저 끝까지 아이들을 사랑해줌으로써, 내가 생을 다한 후에도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 아이들이 남은 삶을 힘차게 살아낼 수 있게 하자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더욱 힘차게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얹어지게 되었으니, 신영복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