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총평>
내 친구의 지인이자 꽤 알려진 작가였다는데, 나는 처음 들었고, 친구를 통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편안하면서도 마음에 여유와 여운을 주는 문체라서 좋았다.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잠‘’ 잠‘이라는 화두를 통해 써 내려간 에세이로써,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비롯된 스토리, 깨달음, 착한 소망..등을 군데군데 맛깔난 비유와 남다른 여행경험을 곁들여서 현대적인 문장을 적절하게 배열하였다. 그런 글 구성이 옛날사람의 느낌을 적절히 중화시켜 주는 문장이었다.
'잠'에 대하여 얽혀있는 통념이나 에피소드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사회적 분위기와 압박을 밑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그런 배경가운데도 열심히 살아내느라 오늘도 애쓰고 있는 인생들을 향해, 위안과 위로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나 같은 독자에게는, 좀 나른한, 좀 나약한 느낌을 ‘잠’ 이라는 몽롱함에 떠안겨 써 내려간 글쓰기 같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아무튼, 뭐가 된들 어떠하리~ '잠'을 통해 세상에서 잠시 피하기도하고, 안식처로 삼기도하고, 깨닫고 재충전도 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느리지만 아롱다롱 엮어간다면야…
<작가> 정희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티베트 인들의 삶과 지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를 시작으로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지구별 어른, 어린 왕자를 만나다』『다시 소중한 것들이 말을 건다』가 있다. 이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와 『지구별 어른, 어린 왕자를 만나다』는 중국, 대만과 중화권에 번역, 출간됐다. 티베트 승려 팔덴 갸초의 자서전 『가둘 수 없는 영혼』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이의 마음이 되는 순간을 사랑해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사람, 이태석』을 비롯해 여러 권의 어린이 책과 그림책에도 글을 썼다.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국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뜨겁고 아린 삶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 주던 말들.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깝지 않던 말들. 이 책에 담은 건 그 애틋하고 빛나는 말들의 녹취인 동시에, 당신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신작 [도서] 아무튼, 잠 (큰글자도서) [eBook] 아무튼, 잠 [도서] 아무튼, 잠 [출처: 예스 24]
<밑줄 긋기와 생각>
• 혼자만의 밤과 잠에 대한 욕구는, 아직 인생에 힘이 남아있는 시절이라는 반증.
•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치를 획득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의 무게를 더해야 마음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 인생이란 시간소비 그 자체니까.
• 여행을 가면 꼭 한 번은 울게 된다.-심보선의 시[외국인들에게]에서
• 심리적 아킬레스건... 나에게는? 깊은 유대의 믿음이 기반한 의심 없는 소통,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 모든 가짜, 가면,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 진짜, 진심, 진실..진실.. 이런 단어, 이런 인간성에 목이 마른다.
•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 “네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 나의 10대 시절, 디킨스의 시를 읽고 같은 생각을 했었고, 그 간절함이 내 인생의 연장선으로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나, 인생을 겪고 난 지금에 이르러 깨닫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저런 착한 열망은 지극히 나르시시즘에 흠뻑 젖은 나른한 자뻑 또는 순진한 젊은 시절의 믿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안타까워 붙잡아줘도 상대는, 왜 원하지도 않았는데 붙잡고 혼자 고상 떠냐고 비아냥 대거나 피해보상 운운하며 적반하장 모드의 돌발사태로 몰아가는 아이러니와 변수가 도처에 지뢰처럼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바른 마인드로 평생을 살아온 탓에, 아무리 경험을 해도, 그 지뢰를 만날 때마다 아파하고 놀래고 오히려 내쪽이 병신 되고 피해 입고병들기를 반복한다는 것. 그래서 늘 그 상처와 충격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역설과 치유의 시간이 늘 필요하다. 다만 맷집이 좋아져서 그 주기가 짧아지는 성장?, 성숙? 같은 이득은 얻게 되는 것이 위로라며 위로다.
때때로 뼈아픈 실상이 있다면, 어떤 경우는 빠져나오지 못해 병들거나, 같이 진흙탕 같은 인생을 살거나.. 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슬픈 결과적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가족잔혹사 또는 비극의 연대기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젊은 시절의 나르시시즘적인 인류애는 젊음의 오만이고 자기애적이고 설익은 키취적 인문적 인류애에 불과할 수 있다는 위험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그저 나이 들고 찌든 인생들의,, 패배자의 핑계처럼 들릴 뿐, 들을 귀가 없다. 설익어서 잘 익은 인생의 맛을 결코 상상하지 못한다는 젊음의 싱싱함이자 젊음의 열정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옳은 선택을 하면서 단단해지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면, 주변의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선택이 옳았다는 중요한 증거로 남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온전한 일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지???
•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치스러운 소망이 생긴다. "품위 있게 괴로움 받아들이기, 위엄을 간직한 채 불안한 영혼을 버티기, 순순히 인생의 비탄을 받아들이기, 운명을 헤쳐나가면서도 온화함과 편안함 잃지 않기, 흔들리고 헤매어도 타인을 타치게 하지 않기"
>> 마음은 원해도 현실은, 전.혀. 소망과 관계없이 무식하고 험악하며 남들 볼 때만 에헴~ 하며 늙어가는 인간들 수두룩 빽빽이다. 게다가 요즘은 나이 든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젊음이 신앙 같은 시대라서 더더욱 가관이다. 그렇기에 이 작가의 이런 나른한 생각과 글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또한, 이 분은 작가로서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살아가기에 이런 말갛고 순전한 소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평생 잠으로 도피하거나 잠의 예찬론자로써, 잠의 나른함 같은 몽롱한 이상주의를 아직 간직하고 살아가기에 이런 말랑하고 필터링되지 않은 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혹 내가 틀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상적이고 순수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고픈 열망으로 승화시킨 글쓰기를 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