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김영하 작가는, 어린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잦은 (강제?)이주로부터 시작해 국내외 여러곳으로 배낭 여행을 다녔다. 작가가 된 후에는 직업관련이든 아니든 자주 여행을 떠났고, 몇몇 곳에서는 오래도록 거주까지 하면서 여행가로써 살아왔다. 자신의 여행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의 의미와 삶, 여행지에서 만나거나 스쳤던 인연들, 그리고 지구별에 와서 잠깐 살다가는 인생여정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좋은 표현들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수집하며, 나에게 여행은 어떠했는지, 나는 여행자의 DNA를 가진 유형의 인간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나의 소회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체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작가의 말처럼, 내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번아웃될때,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나약해졌을 때....'삼십육계 줄행랑'은 언제나 옳다.
*오직 현재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지에서의 생각과 경험은 새로운 개와 주인의 관계가 되어서일까? 그 둘이 함께 새환경에서 생존해야하기에, 과거는 없고 오직 촘촘히 날이 선 현재만 오감각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좋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 모른다."
인터넷이 발달하면(TV가 나왔을 때 역시) 인류는 여행이 줄어들거라 예상했단다. 그러나 AR, VR 가상현실 등등이 등장해도, 그것들이 인류의 여행을 포기시키지 못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인간의 여행본능은 줄어들지 않아서, 동영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했고, 코로나 이후엔 폭발적인 여행수요로 현지의 실체와 그 감각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여행본능 DNA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는 거니까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에게 이런 여행이 있었는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결혼 전, 나 홀로 다녔던 여행이 그랬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있었고, 여행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장소가 그래서 특별했고, 여행지에서 홀연히 떠올랐던 생각이나 깨달음에 전율했으며, 여행후 돌아왔을 때는 여행전과는 달라진 내가 되어 있었다.
단체여행이나 가족여행은 그런 특별함이나 후기가 별로 없었다. 그런 여행에서 나는 그저 일상의 연장선에서 원래의 역할을 해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여행은 가족이나 단체들과 그저 색다른 즐거운 경험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 타자의 관점을 지니는 것_'탈여행' 의 시대가 왔다.
"각종 블로그,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타자의 관점을 공부하고, 직접 가서 경험하고 돌아와 내가 남긴 영상이나 기록들을 편집하면서 또 한번 더 탈여행을 경험한다."
이것이 첫째로는, 방구석 여행자(armchair traveler)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둘째는, 아무리 많은 여행서적과 동영상이 있다 해도 나만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여행기록이 여전히 의미있는 이유다. 셋째로는,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여행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그래서 세상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해야 하듯, 인간에게는 여행과 일상이 공존해야 길고 고독한 인생의 희노애락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갈 수 있을것이다.
결론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는 전통적인 여행기가 아닌 개인의 성찰과 자신의 철학적 깨달음을 담아 여행기보다 풍성한 태리스트리를 선사한다. 김영하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체 속에 담긴 깊은 통찰과 이상한 유머가 독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여행기보다 의미있게 다가한다. 그래서 명상하듯 심오하고, 그래서 심연을 울리는 즐거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