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선 남녀공저: 죤 스튜어트 밀 & 헤리엇 테일러 밀
해리엇 테일러 밀(영어: Harriot Taylor Mill, 1807년 10월 8일 ~ 1858년 11월 3일)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1세대 페미니스트 중 한 명으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보다 100년 뒤에 글을 쓰면서 그와 마찬가지로 합리성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율적 도덕적 측면뿐 아니라 분별적인 측면에서 합리성을 고찰했다. 울스턴크래프트와 달리 그들은 총체적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밀과 테일러는 또한, 울스턴크래프트와 달리 만일 사회가 성적 평등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 사회는 여성에게 남성이 향유하는 것과 똑같은 교육뿐만 아니라 똑같은 정치적 권리들과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엇 테일러와 밀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초기 에세이들(1832)를 함께 썼으며, 해리엇 테일러와 밀은 자유론을 함께 썼다고 하며(1851, 밀이 직접 언급), 밀은 헤리엇이 죽은 후 여성의 종속(1869)를 저술하였다. [출처: https://femiwiki.com/w/%ED%95%B4%EB%A6%AC%EC%97%87_%ED%85%8C%EC%9D%BC%EB%9F%AC_%EB%B0%80 ].
※ "존 스튜어트 밀"의 작가소개는 다음 글 "여성의 종속" 편에서 볼 수 있다.
두 저자 이야기( 죤 스튜어트 밀 & 헤리엇 테일러 밀)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존 스튜어트 밀과 헤리엇 테일러 밀은 한살 차이로 영국 출신들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했고 각종 언어와 철학적 기조에 밝았던 헤리엇은 18세가 되자 사회적 통념에 밀려 사업가였던 존 테일러와 결혼해 아이 셋을 낳았다. 그녀의 진보적인 성향으로 당시 진보적 성향이 강했던 케톨릭 교단에서 지식인들과 교류하다, 몸과 마음이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던 존 스튜어트 밀을 만난다. 그들은 금새 서로를 알아보고 지적교류를 하는 동지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통념상 그녀는 유부녀였기에 두사람이 아무리 플라토닉 러브를 했어도 소문이 좋지 않았고, 헤리엇은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별거를 시작했고 오랜 별거후 남편이 먼저 사망했다. 남편 사망 2년후에 둘은 부부가 되었으나 결혼 7년만에 프랑스여행을 하던중, 헤리엇이 급성폐렴에 걸려 아비뇽에서 사망한다. 두 사람은 결혼초에 이미 에세이를 여러편 내었고, 자유론 역시 헤리엇과의 공저였다. 밀은 아내가 사망한 후 곧바로 "자유론"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4년후 마지막 유작 "여성의 종속"을 발표한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성의 종속 역시 헤리엇의 참여가 많았던 내용이었다고 밀은 헤리엇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서문을 남기고, 자신의 할일을 다했다고 말한다. "여성의 종속" 발표후, 밀은 아내와 사별했던 프랑스 아비뇽에서 생의 마지막 몇년을 보낸 후 사망한다.
내용과 소감
19세기 시대를 감안할 때, 대단히 포용적이고, 인본주의적 내면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인간미가 있다. 산업혁명으로 격변하는 시기였기에, 동인도회사에서의 실제적인 경험과 현실적 지식이 녹아져서 자신의 논리를 잘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삶은 크게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종교적 편견과 정치적 억압의 현실을 따져보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던 독자들에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아니 나의 삶의 현실도 여전히 그런 통념들로 억압되어 살고 있음을 본다. 200년전에 씌어진 책이란 사실을 망각하게도 했고, 또 그 사실에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다.
밀은 좋은 집안에 태어난 귀족신분이었고, 20대에 만난 철학자 헤리엇과의 지적교류, 그리고 결혼까지 이어진 사랑꾼으로 행운이 가득했던 사람이었기에, 시대에 대항할 수 있었고 시대를 앞선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헤리엇 덕분에 여성해방에 대한 깨어있는 지식인이 되어, 캐톨릭이 인간의 구원이라는 전제로 오히려 인간성(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용기있게 고발하는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밀이 주장한 내용중에, 개인의 사상이나 표현의 자유를 토론을 통해 수렴하는 자세, 진리에 대한 포용성(모든 주장은 일부 진리를 담고 있을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개성의 적극적인 발현(천재들은 이미 강한 개성이 내포된 인간들)에 대한 내용에 무척 공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수 의 의견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억압에 대한 입장_"소수의 의견도 일부 맞는 진리가 있을 수 있다. 다수의 법칙으로 무시당해서는 안된다."_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사회적 다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사상적 고전'이라 여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해석이 이상한 곳도 몇 군데 있었고, 철학적 수사가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5장 적용부분은 머릿속에 남긴 것 없이 거의 그냥 넘겨버렸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힘든 책이었고, 마치 헌법에 보장된 이야기의 기본사상을 풀이하는 서술서처럼 느껴졌다.
그 중에 내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 싶다고 메모했던 것도 몇가지 있는데, 첫째 '나의 생각을 뭍어두지 말고, 펼치고 실험해 보자.', 둘째 '토론이 가능한 사회안에서 검증해 보면서 살고자 계속 시도하고, 그런 사회적 여건(이웃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인생을 도전하고 탐구하고 싶다' 는 생각이다. 이렇게 여성으로써의 나의 삶의 태도를 점검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의욕를 남겨준 인상깊은 책이었다. 또한, 알릴레오 북스의 '유시민 이사장'의 질문도, 희망적인 답변 역시도 좋았다. 질문: "이러한 기본이 우리사회는 마련되어 있나?", 그의 대답: "아직 부족하지만 계속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지속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는 어느정도 확보가 된 사회인 것 같다.(한국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