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애도의 맛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겪었던 개인적인 인생사와 그 배경이 되었던 한국 근대사의 어두웠던 현실을 양지로 끌어내어, 개인과 사회적 애도를 하도록 이끌어낸 작품이다. 사회학자 그레이스 조의 어머니 '군자'는 625 전쟁 중에 가족을 잃고, 살아남아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틴에이지가 되어서는 미 8군 군부대에 정부가 합법적으로 만든 성노동 현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하여, 한국땅에서의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왔으나, 또 다른 차별 속에서 두 아이를 키워내고, 조현병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십 대 시절에 발병한 어머니의 조현병은, 그녀의 삶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게 된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레이스 조는 어머니의 생애를 거슬러 탐구하며, 어머니를 이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한국과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전쟁의 맛"은 한국전쟁을 통해 희생된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정치적 문제들을 고발함으로써, 그동안 아픈 역사를 힘들다고 왜면하고 그 희생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사과를 등한시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는 이제 마주하고 고쳐가야 할 방향과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어머니의 조현병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의 성장에세이이자, 시대와 사회적 죽음을 당한 '군자' 라는 한 여성에 대한 '진정한 애도의 맛'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에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소개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 상선 선원이던 백인 미국인 부친과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언어, 문화적 배경, 기억과 음식 등 생활의 사소한 부분들에 의해 정체성이 정치화되었던 냉전 시기 외국인 혐오가 극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열다섯 살 때, 활동적이던 모친의 조현병 발병을 경험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존재와 생애가 개인적·학문적 인생의 중대 지표가 되었다. 브라운대학 졸업 후 하버드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뉴욕시립대학에서 사회학·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책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Haunting the Korean Diaspora: Shame, Secrecy, and the Forgotten War』(2008)으로 2010년 미국사회학회 ‘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부문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대표작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2021)은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올랐고,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뉴 인콰이어리The New Inquiry』 『그랜타Granta』 『아트포럼Artforum』 『콘텍스트Contexts』 『가스트로노미카Gastronomica』 등에 글을 싣고 있다. [예스24 작가소개 https://www.yes24.com/24/AuthorFile/Author/429225> ]
이 책의 내용 중 일부의 '사실관계'에 대한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밝힌 결과가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그레이스 조의 다른 가족들이 책의 일부 사실에 대한 강력한 항의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저자와 저자의 지인들이 보내온 증거들과 증언들로 책 내용은 다 사실에 가까움을 입증한다는 결론적인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함께 연구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었던 지인의 말 중에 인상 깊은 편지 구절이 있어서 옮겨 보았다.
"몇 달에 걸친 그들의 열성적인 트롤링은 ‘정상’ 가족에 대한 뿌리 깊은 욕망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저자와 저자의 생물학적 가족 간의 관계에 드리운 외로움의 깊이를 알게도 해주었습니다. 그레이스의 작업은 승인되지 않은 일상의 폭력이 가정사에서 어떤 식으로 침묵과 비밀에 연루되는지를 대담하게 심문합니다."
[출처: 글항아리<http://geulhangari.com/archives/12147?ckattempt=1> ]
잔인한 폭풍 같은 감상
그레이스 조는, 엄마의 병과 여러 가지 이상행동, 기이한 그녀의 조각조각난 과거사를 재료로, 어린 시절 저자의 기억과 어머니의 말, 그리고 한국과 동아시아 역사연구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아픈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얻은 어머니의 조현병은, 딸이자 작가인 그레이스의 삶의 주요 과제가 되게 했다. 어머니가 바라던 학자가 되었고, 자신의 전공이자 평생의 업이 되어, 연구와 강의, 그리고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레이스 조는, 한국전쟁으로 희생 당한 개인사와 그 트라우마, 그리고 국제결혼 후 미국에서 겪은 인종차별로 인해, 결국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엄마의 인생을 자신의 기억과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기술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픈 가족사를 용기 있게 드러내어, 치유와 사랑의 힘을 얻고, 학문적 업적까지 이루어낸다.
이야기는 딱히 어머니의 인생을 사건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엄마이 조현병 발병을 시작으로 과거를 추적해 나가면서, 연대기를 앞뒤로 오고 가는 형식이다. 그녀의 가족을 둘러싼 사건 사고, 그리고 저자의 성장과 학업과 연구의 관점 등등… 연대기별 구분은 지었으나 좀 오락가락한 느낌이라 딱히 구심적 전개라든가, 연대기적 서술의 뚜렷함은 없어 끝까지 좀 아리송~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화자의 중심인물인 어머니 '군자'의 과거도 뚜렷한 라인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글의 구성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족사가 얽힌 문제 때문에, 다른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배려나, 실체를 다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그렇게 약간 모호한 구성을 띤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미국 이민자이자, 부모로서,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신 친부모님을 가진 입장에서, 이 책은 나에게 큰 공감과 이해가 되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한 소녀가 집요하게 엄마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었고, 아픈 과거사를 연구하고 해석해 내는 것이었기에, 작가의 긴 궤적과 노력에 감동과 존경심이 우러났다. 무엇보다, 그토록 힘겨운 삶을 살다 갔지만, 딸의 이런 애정과 노력으로, '군자'의 삶이 숨겨지고 아픈 생이 아니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환하게 빛을 발하게 되는 것 같아 고마웠다. 어머니 '군자'는 딸 덕분에 저승에서라도 행복하고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자인 나도 위로가 되고 좋았다. 세상에 어느 인생이 의미가 없고, 고생스럽지 않았을까? 그런 우리 모두의 삶과 애고에 깊은 경외감과 박수를 보낸다.